1시간 30분의 자유 바느질 일기
2008.07.21 00:56 Edit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
분당서울대 병원에 다닌지 1년째가 되던 지난 봄.
병원진료일에 의사샘께 여쭤봤었다.
"요가도 다니고요, 음료수는 거의 마시지 않고요.
과자도 안먹고요,밥도 많이 안먹고요,
술은 마실줄조차 모르는데 왜??? 살이 꾸준~히 찌는 걸까요?"
"얼마나 쪘는데요?"
"1년사이에 10키로가 불었던데요? "
"에?.. 지금 먹는 약 4가지중에 3가지가
살찌는 부작용이 있긴 한데..."
"예~에? 정말요??? @@;; "
"그럼, 3가지 약은 빼고 하나만 먹으면서 경과를 보지 뭐.."
"그 약 안먹으면 다시 빠질까요? ㅜ.ㅜ"
"뭐... 어렵겠죠?"
- -;;
넘 심플하게 대답하신 의사샘.
여튼..그날부터 불어난 살빼기의 일환으로
다니던 요가는 그만두고 자전거 타기를 시작했다.
난 절대 기억에 없는데
"작년까지 엄마, 내 자전거타고 다녔어" 우기는 미노와
"다리 안닿아도 타고 내리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어"
새자전거 사주기 싫어 우기는 남편의 술수에 몰려서
첫날, 미노의 높디높은 자전거타고 바람넣으러 가다가
신호대기중인 자동차운전자들에게
SHOW 한판 보여주면서 나자빠져선 허벅지에
솥뚜껑만한 멍하나 훈장으로 받고
'여성용'이라는 내자전거를 갖게 되었다.
단지 살빼려는 마음 하나로
트레이너를 자처하는 남편의 자전거 뒷꽁무니를 따라 나선 길.
우리 아파트앞에서 분당으로 이어지는 자전거도로.
그 길을 달린 첫날.
참 행복했다...
아직 공사가 채 끝나지 않아
가로등도 켜지지않고 다니는 사람도 없는 깜깜한 자전거 도로.
아무소리도,아무 불빛도 없는 그 길을 달리면
어디선가 날아오는 봄꽃내음이 참 좋았고
코끝이 알싸해오는 봄밤공기가 참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것.
언제나 생각하면 눈처럼 벚꽃 날리던 스무살의 4월을 생각하게 하는
애니메이션 "초속 5cm" 의 그 다리 밑.
그 다리 밑과 너무나 닮아 있는 이 길.
지금은 자전거도로공사가 다 끝나
가로등도 켜지고 사람들도 많아져 그때와 다른 모습이지만
아무도 다니지 않는 깜깜하고 고요한 길에
종착역으로 들어오는 텅빈 전철 불빛,
브레이크 쇳소리가 가득 울리던 그 순간이
참 행복했었다...
그래서..
아주아주 열심히 자전거를 타러 다녔다는 이야기.
비오는 날, 그 길은 어떤 모습인지 넘 궁금해서
타러 나갔다가
빗길에 미끄러져 자빠지기도 하고....
근데 어느 운동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복장을 참 열심히 잘 갖추는 이들이 있다.
'바구니달린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면
소리부터 다른 사이클을 엄청 많이 만나게 되는데
처음엔 열심히 차려입은 그 '복장'이 좀 비위에 거슬렸으나.
얼마지나지 않아 그 '복장'이 참 부러워지더라는..
밤에 자전거를 타다보니 날아드는 날벌레를 눈알로 먹어주시는 일은 다반사.
'아, 밤에 선구리같은 고글 쓰는 이유가 있었구나'
패달 밟을때마다 걸리적거리는 바지가랑이를 둥둥 걷으며
'아,남자나 여자나 쫄바지 입는 이유가 이거구나'
바보 도트는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는...
그치만 바구니 달린 자전거에 사이클 복장은
너무 오버인지라 내나름의 사이클 복장으로 만든게
바로 이 바지.
패달밟을때 걸리적거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민망한 쫄바지도 아니라 대만족.
.....
내게 1시간30분의 온전한 자유를 알게 해준 그 길.
눈발이 날리는 겨울 밤.
그 길은 어떤 모습일지가 너무나 궁금하다.
Comments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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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열심히 사시는 모습이 언제나 아름다운 분이신데... 어디가 안좋으신가보네요.
아들 자전거 이야기를 보면서 혼자서 웃었습니다.
울남편도 다리 안닿아도 괜찮다고 우기는 것을 전 절대로 타질않고, 제것으로 탔었지요.
물론 누가 고이 모셔갔지만요.^^;; 그렇게 우기던 남편이 좀 서운하기도 했었는데...
조이님은 그래도 타셨었다니 괜시리 내가 엄청 고집센 여자인가 싶은 생각이 불현 듯 납니다.
요즘은 재수 하는 딸래미 땜에 마으미 편칠않아서 안타지만, 다시 타고 싶다는 생각이
조이님 글 읽으면서 들었네요.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세요... -
조이님,저도 약부작용으로 사이즈가 1.5인치 늘어난 적 있는데요. 약부작용으로 불어난 살들은 정말~윽 이죠. 항상 건강 챙기시구요~
그리고 항상 한편의 에세이를 읽게 해주는 조이님의 글솜씨는 넘 멋집니다(아부 아니구요~).
자건거의 추억...음 제가 꽃다운 스물넷(지금으로부터 몇년전이라고는 밝히고 싶지 않구요)
일때..일본에서 공부할때 하루 3시간 이상을 자건거들 타고 다닌적이 있어요.. 물론 왕복포함해서죠.. 아시다시피 일본은 교통비가 어마어마 하잖아요. 비가오나 눈이오나 줄창 자전거(무지 낡은 중고였는데..어느날은 일본분이 제 자건거 바퀴 빠질것 같다고 걱정하는 눈빛으로 얘기도 해준적 있어요) 높다란 나무사이에서 눈꽃처럼 흩날리던 벚꽃은 지금도 잊을 수 없구요. 그때 까르르 웃으며 함께했던 친구들 넘 그리워요. 다시금 푸르던 그때를 생각나게 해준 조이님~ 넘 감사해요. -
후후.. 얼른 배기바지 만들어야겠네요.
저두 한 두달전에 동네 자전거포에서 중고로 한대 마련했어요.
초등학교 4학년땐가..집 옆 약간 경사진 언덕을 이용해서 균형잡는 거부터 시작해서 혼자서 자전거 배웠더랬지요, 저도...
외할머니께서 쓰레기장에서 아주 멀쩡한 어린이용 자전거를 하나 주워다 주셨었거든요...
한참 잘 타고 다녔는데, 동생이 끌고나가선 덩치 큰 어떤 오빠야한테 뺏기고 왔다는...ㅠㅠ
그 이후로 엄마께 암만 졸라도 절대 안사주셨더랬죠..
내 이담에 돈 벌어서 사고 말리라... 결심했는데,
그 결심이 어언 25년이나 흘러서 이루어졌다는.. ㅋㅋㅋ
중고지만 그래도 바구니는 새걸로 달았어요.ㅎㅎㅎ
동네가 자전거 도둑 많기로 유명한 동네라 새거 구입했다 잃어버리면 열받아 드러누울것 같아서 그냥 중고로 샀답니다. 저두 안장에 앉아서 바닥에 발 안 닿으면 못 타겠더라구요..ㅠㅠ
가끔가다 할머니들이 높은 거 타시는 것 보면 정말 대단하시다~~ 하면서 넋 놓고 구경한답니다. ㅋㅋㅋ
근데, 조이님.. 자전거 타시고 살이 좀 빠지셨나요?
저는 종아리가 더 굵어지진 않을까 걱정인디... -
ㅎㅎ. 첫째 데리고 자전거 타다가 넘어진 뒤로 거들떠도 안봤어요.. 지금은 애가 셋.. 셋 다 델고 자전거 타러 다녀보고 싶네요.. 집 담벼락에 세워놓은 자전거가 녹이 슬정도로 오래 방치했네요.. 슬슬 타고 다녀보고 싶지만... 애가 조금 더 크면.. 10개월 딸내미도 자기 자전거 타고 다닐수 있어 아이들 모두 같이 자전거 타고 다닐수 있는 그때 다시 자그마한 자전거를 구입하려고 계획중이었답니다.. 조이님 글 읽으면서 예전 큰애만 데리고 풀길을 지나서, 나뭇잎을 바라보고 설명해주고, 꽃입을 따다가 장난치던 생각에 조그마한 행복을 느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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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발 날리는 겨울밤 사진도 보여주실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