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바느질 일기
2008.04.07 02:48 Edit
중2인 미노가 금강산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온 그 2박3일간...무지하게 바빴다.
돌아오면 짠! 하고 뭔가 기뻐할 일을 만들어 두고 싶었는데
그게 바로 미노방을 새롭게 꾸미는 일.
그동안 바꾸려 했던 낡은 책상을 바꾸고
침대커버를 새로 만들어 씌우고
난장판인 방도 깨끗히 정리를 하고...
남편에게 미노의 반응이 어떨지 물으니
아마도 '무반응'일거라고...
하지만 마음속으론 분명 기뻐할거라 했는데
역시나...돌아와 방에 들어선 녀석은 반응이 없다.
저녁에 남편이 "미노야, 엄마가 그방 꾸미려고
너 없는 며칠간 얼마나 애썼는지 모르지?
엄마 한번 꼭 안아주면 좋을텐데..."
말에도 그냥 피식.
섭한 마음은 조금 접어두고 짐짓 쿨한척...
"괜찮아,괜찮아...지금까지 너무 착하고
이쁜 아들이었던걸로 충분해..
이제 엄마가 빚을 갚을 차례지.." 너스레를 떤다.
밤에 자려고 누운 녀석 잠자리를 살펴주는데 와락 목을 껴안는다.
"엄마, 미안해..고마워.."
그래...
사춘기를 겪어내는 너가 더 힘들지...
누군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물으면
너를 낳던 날이라고 망설이지 않고 말하게 해줘서 고마워.
세살때, 놀이터 앞에서 길 잃었을때 멀리가지 않고
거기서서 엄마 기다려줘서 고마워.
처음 어린이집 가던 날. 많이 무서웠을텐데..
눈물 뚝뚝 흘리면서도 잘 참아줘서 고마워
어버이날마다 너가 달아 주었던 카네이션,
아무때나 써주었던 쪽지들... 차곡차곡 모아 뒀다가
나중나중에 펴볼수 있게 해줘서 정말 고마워.
너가 지금까지 엄마에게 주었던 행복한 시간,기억들...
그땐 감사함을 몰랐던거 정말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Comments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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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밤, 딸래미 로라 코트를 만들다가 다시한번 확인하려고 사진 보러 들어왔다가... 밑의 아버님 셔츠 만든 사연도 그렇고... 미노에게 하신 말씀들 보고... 빨리 코트 단추구멍 뚫어 완성하고 자야하는 시간이건만... 꼭 한자 적고 싶어 글 남기네요.
아직은 23개월 아이 치닥거리 하느라 내내 힘들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래도 첨에 한 1년동안은... 곤히 자는 딸래미옆에 누워서 고마워... 살아줘서 고마워... 했던 적이 있었더랬죠...
그래도 그땐 그랬는데... 아이가 걷고 기동력이 생기고, 꾀가 늘고, 떼도 늘고... 그래서 엄마는 백배천배 더 힘들어지고 나서는... 어느순간부터 엄마는 너무 힘들어... 이말만 입에 달고 살았던것이 아이에게 새삼 미안해집니다.
어느분 답글엔가 조이님께서 아이 옆에서 아이 숨소리를 들으면서 잠 잘수 있는 날이 생각보다 길지 않다고...그말씀 하신거 보고... 밤에는 웬만하면 바느질도 하지 않았는데...
내일 눈 뜨면 아이에게 고마워, 고마워... 노래해 줘야겠네요.
우리딸... 엄마 뱃속에서부터 아파서... 생사를 장담할수 없다는 얘기를... 34주에서야 들었던 아이랍니다.
더 일찍 들었어도 포기하진 않았겠지만... 예쁘게 아이방을 꾸미고, 아이 침대 가드를 만들고... 예쁜 방을 꾸미던 때에... 이 짐들을 다시 싸서 넣어야 할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아이방을 들여다 볼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더랬습니다.
횡격막 탈장...
이름도 생소한...
그리고... 죽거나... 살거나... 50:50의 확률만 가지는...
아프지만 살아남거나 아프다가 죽는게 아닌... 죽거나, 살거나... 둘중의 하나의 예후를 가지는... 그런 증상이라더군요.
아이가 태어나도, 지금으로 봐서는 상태가 너무 안좋아서... 수술을 해 주기나 할지 모르겠습니다... 라는 방사선과 선생님 진단을 들고...
신생아 케어를 잘 해서 생존율이 높다는 병원을 찾아다녔었지요.
아이가 아파 양수가 너무 불어서, 남들이 쌍둥이 아니냐고 물어보는 그 배를 하고...
기차타고 서울을 오가면서... 내아이를 살려줄 병원을 찾아다녔더랬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참... 그때처럼 절절한 마음으로 아이를 키우면... 정말 훌륭한 엄마가 될텐데... 싶습니다.^^;
생후 3일째에 수술을 받고... 다음날부터 상태가 급 좋아져서...
장하게 이겨내고 3주일만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퇴원한 우리 딸래미...
잘먹고, 잘 싸고... 14개월까지 한번도 아프지 않고 잘 커줬답니다.
아이옆에서 자면서... 살아줘서 고마워... 살아줘서 고마워... 건강하기만 하면 다른거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께... 너무 고마워서 울었던 날들도 여러날인데...
지금은, 엄마 괴롭히지만 않으면 다른거 아무것도 안바래... 이렇게 바뀌고 말았네요.^^;
조이님 글 보면서, 그때 생각하면서... 새삼 반성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는 날이 됐네요.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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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잘 보고, 잘 배우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